머신러닝 엔지니어의 2023년 회고
3년만에 돌아온 회고
2020년 회고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루틴처럼 하던 한 해 회고가 없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안 하기 시작하니 1년, 2년 쌓여서 안 하게 된 것도 있고, 지나고 나서 보니 COVID-19 기간 특별히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패배자 같다는 생각에 약간의 우울감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적기 싫어서였던 이유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사회 초년생 때의 열정을 가진 나는 이미 없어져 버렸고, 조금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올해는 다시 회고를 작성해 본다. 가끔은 열정이 없어져 버린 내가 서글프게 느껴지지만, 하루하루 그리고 한 해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다면 무엇이 특별히 성장하지 않았어도 기록을 남기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업무
올 해가 퀄컴에서의 2년차였고, 라인 매니저와 테크 리드 모두에게 작년보다 조금 더 여러 부분 (하드 스킬, 소프트 스킬 모두) 영향력 있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란다는 피드백을 들었었다. 돌이켜봤을 때 쿠팡이나 카카오에서도 1년차 때는 어느 정도 조직이 돌아가는 구조를 먼저 파악했었기 때문에 2년차부터 좀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였었고, 그래서 퀄컴에서의 2년차도 작년보다는 좀 더 잘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다. 상대적으로 생소했던 Quantization과 On-device Machine Learning에 대해서 1년차 때는 공부하고 조금 작은 볼륨의 개발을 했다면, 올해는 여러 가지 케이스에 대해서 개발 및 성과를 낼 수 있었던 한 해 였다.
- Keras framework Quantization Analyzer 구현 (Feature Development)
- Quantization Aware Training 수정 (Technical Debt)
- On-device Generative AI를 지원하기 위한 IR 전처리기 구현 (Company-wide Task)
세 번째 태스크는 전사 차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였고, 실제로 공개 Summit에서 데모로 나간 프로젝트(On-device LLaMA 7B, On-device GigaGAN)의 코어 컴포넌트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AI Research 조직이다 보니 개발하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어디에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고민을 상당 부분 만족시킬 수 있어서 매우 뿌듯했다.
올해는 특히 한국의 신규 입사자 및 미국 Sandiego, 인도 쪽 엔지니어들과 Cross-region으로 활발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고 대화 및 코드 리뷰를 통해 기술 내외적으로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의사소통 시 내가 원하는 바를 100% 전달하지 못한 부분은 역시 매년 따라오는 문제였고, 그냥 꾸준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추가로 업무 범위가 늘어나다 보니 문서화할 일이 많아져서 작문 쪽도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한 2023년이었다. 회화는 주로 아래 유튜브 채널을 짬이 되는 대로 많이 보고 연습하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의 대인 관계 부분도 꽤 많이 변한 한 해 였는데 라인 매니저와 본격적으로 1:1을 하면서 좋은 신뢰 자본을 쌓았다고 생각하고 (물론 라인 매니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lol), 석사를 졸업하고 입사한 아주 똑똑한 엔지니어와 같이 IR 전처리기 구현에 많은 부분을 기여했다. 아직 나도 마음만은 주니어 엔지니어인데 이제 연차가 차다 보니 이런 작은 부분에서의 피플 매니징도 회사나 조직에서는 어느 정도 요구하는 것 같아 가능하면 많은 대화를 하고 업무에 대해서 투명성을 유지하려고 했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좋은 퍼포먼스를 내셔서 나도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
스터디
회사 내에서 그리고 외부에서도 올 한 해 여러 가지 기술 관련 스터디를 진행했다. 큰 범주에서 보면
1) Advanced Python
2) Problem Solving
3) Software Engineering
세 가지로 볼 수 있겠다.
1) Advanced Python
아무래도 AIMET의 주 기술 스택 중 하나가 Python이기 때문에 작년에 읽어본 Python Tricks: A Buffet of Awesome Python Features 에 이어서 올해는 조금 더 분량이 있는 Python 책인 Effective Python 2nd 스터디를 통해서 진행했다. 해당 스터디는 인프런을 통해서 모집하고 진행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거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스터디에 집중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소 아쉬웠지만 끝까지 완독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24년에는 Fluent Python 또는 C++ 서적을 보려고 계획 중이다.
2) Software Engineering
여러 엔지니어들이 많이 추천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관련 책들 역시 스터디 또는 혼자서 챙겨보았다. The Missing ReadMe는 회사 내의 Reading Group에서 돌아가면서 읽고, 발표를 하면서 서로의 경험도 공유하고 퀄컴에서는 어떤 부분을 적용할 수 있는 지 얘기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이 책은 모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연차에 관계 없이 반드시 읽어봐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외에 존 소메즈의 소프트 스킬 2판을 베타 리뷰할 기회가 있어서 챙겨보았는데, 이 책 역시 회사 업무에 많은 부분을 적용해볼 수 있었고 도움을 받았다.
3) Problem Solving
우연히 골든래빗에서 지원하는 묘공단이라는 스터디 그룹을 알게 되어, 그동안 아주 많이 낡았던 Problem Solving 관련 자료구조/알고리즘 공부를 강제적으로 할 수 있겠다 싶어서 11월부터 진행중이다. 이직 준비하면서 또는 면접관으로 들어가기 전 벼락치기로 필요할 때 공부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빈출되는 유형을 다시 정리할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럽고 거기에 더해 하루에 최소 1문제씩 문제를 풀어서 커밋하는 습관을 들여보고 있다. 학생 때 CodeForces를 참여하면서 레이팅을 올리려고 열심히 했었는데, 이번에도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AtCoder 플랫폼에 참여해볼 생각이다. 마지막 CodeForces 레이팅이 Mint였기 때문에, AtCoder 역시 그에 대응하는 Green/Mint를 24년에는 목표로 해본다
독서
COVID-19 이전에 참여했던 독서 모임을 마지막으로 기술 서적 외의 독서는 아주 드물게만 했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성향 중 극 T에 가까운 나는 공감 능력 개선을 위해서도 올해는 책을 좀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운이 좋게도 거주하는 곳에서 꽤 오래 진행된 독서 모임이 있어서 주저 없이 신청하고 봄부터 활동했다. 오래된 모임인 만큼 그룹장님이 좋은 원칙을 가지고 열심히 운영하시는 모습에 나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덕분에 작년 대비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 모임은 격월로 비문학, 문학을 읽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문학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도서전도 가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외적으로 동기부여도 얻을 수 있었다.
올해 끝까지 읽은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미래과거시제
- 타워
- 공정하다는 착각
- 핏빛 자오선
- 스티브 잡스
- 도둑맞은 집중력
- 파친코
볼드 표시를 한 책 중 소설인 미래과거시제와 파친코를 매우 재밌게 읽었고, SF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너무 재밌게 읽어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인 타워도 읽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비문학 책은 도둑맞은 집중력이 실체가 있는 여러 가지 조언을 제시하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 (물론 모든 독서가 그렇듯 본인의 상황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서로 다른 배경의 인원들이 모여서 책 내용에 관해서 얘기할 때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었고, 반대로 다른 그룹원들도 얻어간 것이 있었기를 희망한다. 2023년 막바지 모임은 여러 가지 불가피한 이유로 모임 참여를 못 했는데, 24년은 다시 또 열심히 참여하고 올해만큼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조깅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 2~3회 꾸준히 뛰었다. 주로 석촌 호수 근처를 많이 뛰는 데, 사람들 붐비는 게 싫어서 가능하면 오전에 또는 퇴근 시간 전에 많이 뛰었고 COVID-19 기간 간헐적으로 있었던 허리 통증이 조깅 덕분인지 많이 개선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페이스를 더 올려서 뛰어보고 싶은데, 작년에 조금 무리했더니 발생한 발바닥과 오금 부상 때문에 올해는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뛰는 것에 의의를 뒀다. 조깅의 장점은 따로 강조하지 않아도 너무 많지만, 운동화 (가능하면 조깅에 도움이 되는) 한 켤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에 업무에서 발생하는 온갖 잡념을 제거하기에는 제격이다. 요즘 유행하는 갓생 (?) 덕분인지 조깅하는 분들은 주위에서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혹시 뛰지 않는 분들을 만날 때는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내년에는 5km나 10km 달리기를 도전해 보고는 싶은데, 성향상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부대끼는 게 싫어서 조금 고민은 된다.
정리하면서
COVID-19가 완전히 종식되어 일상으로 돌아간 첫 해. 업무 내외적으로 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사회 초년생 때처럼 너무 성장해야 지에 매몰되지 않고 쉬어갈 때는 적절히 능글맞게 뻗대보기도 하고, 열심히 달려야 할 때는 또 열심히 달려봤다. 업무의 하드 스킬 쪽은 Cross-region으로 작년 대비 더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여전히 배울 게 많고 배울 수 있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을 얻어간 한 해였다. 소프트 스킬 역시, 위로는 라인 매니저와 아래로는 신규 입사자분들과 대화 및 업무를 하면서 많은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년을 위해서 뭔가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올해보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기다려본다.